한번쯤은 들어봤지만 읽진 않은 책들이 내겐 많다.
사피엔스도 그중 하나였는데 과학알못인 난 이쪽 분야에 잼병이라서 그런지 쉽게쉽게 풀어쓴 책임에도 사실 지루한 건 어쩔수 없었다..ㅠㅠ
겨우겨우 억지로 억지로 읽었다!
한마디로 이야기 하자면 사피엔스는 세계를 지배한 오늘날의 호모사피엔스, 인류가 어떤 발달과정을 거쳐왔는지, 어떻게 사회 구조를 정립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라 할 것이다.
우리 사피엔스는 농업혁명, 고대 기념비적 구조물에서 볼수 있듯 다른 동물과 달리 보다 높은 열망이 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삶을 힘들게 만들었다는 시각이 흥미로웠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탄생한 사피엔스가 오늘날의 4차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수 있었던 요인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러한 사피엔스의 진화적 성공은 이기적이라는 데에 그 비밀이 있다.
자연적 본능과 사회적 유대를 파괴하는 산란용 닭이야기, 산업적 육류농장의 송아지 이야기는 사피엔스의 진화적 성공이 다른 개체에겐 끔찍한 재앙을 안겨다 주는 한 예이다.
진화적 성공 과정에서 사피엔스 내에서 불평등의 고착화가 진행되어 온 점도 다른 개체들과 차이가 있다 할 것이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이들은 창조주에게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포함하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사피엔스의 진화는 평등이 아닌 차이에 기반을 둔다. 저자는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르게 진화했으며, 이들은 변이가 가느한 모종의 특질을 지니고 태어났고 여기엔 생명과 쾌락의 추구가 포함된다" 라고 구절을 수정한다. 자신의 이익과 권력, 욕구 충족을 위해 아주 오랫동안, 견고히 형성된 우리 사회의 피라미드는 인간 불평등의 적나라함을 보여준다.
때론 사회 피라미드는 우연한 역사적 사건에 의해 생겨나기도 한다. 아프리카 노예 무역이라는 우연한 역사적 사건 이후 노예무역이 사라진 이후에도 미국내 노예 소유관습, 인종차별적 입법, 사회적 관습은 지속되었고 이는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흑인들, 불리한 사회적 조건 내에서 살아가는 흑인들을 양상했다. 이는 흑인은 열등하고 불결하다는 문화적 편견을 만들어내고 끊임없는 인종차별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사실 대부분의 사회정치적 차별에 논리적, 생물학적 근거가 없으며 우연한 사건이 신화의 뒷받침을 받아 영속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저자의 지적은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화두가되는 '여성혐오, 남성혐오, 페미니즘' 문제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생물학적 성이 아닌 사회적 성의 구별과 분리가 남성중심의 사회를 낳았으며, 사실 이러한 사회적 성의 형성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지속되었다.
태초부터라고 단정할 순 없어도 적어도 농업혁명 이후부터 인간사회에선 부계사회가 유지되어왔고, 고대 아테네시절부터 여성은 투표권이 없었고, 아버지나 남편의 소유물이었다고 한다. 사실 인간의 경우 육체적 힘과 사회적 권력 같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에도(혈기왕성한 이십대 청년들은 쇠약하지만 권력을 소유한 육십대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한 예이다.) 이러한 남성 우월주의가 지속된 것은 무슨 요인 때문일까?
책에선 남성의 공격성의 결과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를 낳았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전쟁은 역사를 통틀어 남자들의 특권이었고, 남자와 여자가 필적할 때 폭력적이고 공격적 성향을 가진 자는 남자라는 실제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여자는 남자보다 남을 조종하고 유화책을 쓰는 능력이 우월하다는 관념도 있으니 말이다.
또다른 관점은 남녀의 각기 다른 생존 및 번식전략을 요인으로 제시한다. 남자들이 가임기 여성을 임신시킬 기회를 놓고 서로 경쟁할 때, 다른 남자를 넘어서 이기는 능력에 그 성공여부가 달려있는 반면, 여자는 자신을 임신시킬 남자를 찾는데 어려움이 없는 반면 자궁속 9개월간 아기를 힘들게 품는 동안 남자에게 의존하며 자신과 자녀의 생존을 보장해야만 한다. 이는 순종적이고 집안을 잘 도보는 여자의 여성적 유전자가 후대에 전해지는 요인이라는 관점이다.
하지만 이 역시 보노보나 코끼리처럼 의존적인 암컷들과 경쟁적인 수컷들 간 역학관계의 결과로 모권 중심의 사회가 나타난 종들도 있다는 점에서 설명의 취약성이 있다. 이러한 종들과 같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이 사회적 능력, 예컨대 협력과 유대, 설득의 기술을 발달시키며 공격적이고 자율적이며 자기중심적인 남성을 조종하여 여권중심 사회를 이룰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젠더의 격차는 세기를 거치면서 고착화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그 오랜시간 진행되어온 젠더의 격차는 오늘날 굉장한 속도로 좁혀들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남성 중심 사회의 형성이 사피엔스의 생존전략 중 하나라면, 오늘날의 양성 평등 운동의 노력은 진화가 반드시 진보를 의미하진 않는다라 할것이다. 하지만 과연? 오늘날의 방향이 역사의 진보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런지 모르겠다. 이는 또다시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온 남성우월주의가 왜,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는 지점이라 할 것이다.
사피엔스는 현세적 성공을 위한 진화과정을 진행시켜왔을 뿐 아니라 내세적, 인본주의적 관점에서도 진화과정을 진행시켜왔다. 다양한 철학, 종교의 발전은 다른 개체들과 사피엔스를 구분짓는 또다른 특징이라 할 것이다. 행복이란 쾌락적 감각을 위해 종교와 철학, 이데올로기를 발전시켜왔다고 설명하긴 생물학적으로 모순이 발생한다. 예컨대 불교는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로 생물학적 쾌락을 유발하는 이런저런 즐거움을 느끼지 않는 것을 제시한다. 생물학적 쾌락과 감정은 일시적이며 영원하지 않다는 속성을 이해하고, 이에대한 갈망을 멈추라는 것이다. 그러한 덧없을을 깨달으면 스스로가 어떤 감정이든 받아들이며 완전한 내적평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는 생물학적 쾌락을 넘어선 궁극적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불교는 제시한다. 이렇게 본다면 종교, 철학등을 진정한 행복을 탐구하는 과정으로서의 '행복의 역사'라고 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종교, 철학적 분쟁을 보고 있노라면 현대의 행복의 역사가 진보하는 과정으로 가고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저자는 호모사피엔스의 다양한 사회, 경제적 경계를 설정하고 발전시킨 양상을 이야기 하며 오늘날 지구 전체의 주인이자 생태계 파괴자가 된 사피엔스를 신이된 동물로 묘사한다. 그러한 역사과정에서 개별 사피엔스의 역량은 크게 늘어났지만 복지를 개선시키진 못하였고, 다른 동물에겐 큰 불행을 야기하는 일을 되풀이 시켰다고 비판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 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 하며 무책임한 신들인 사피엔스에게 경고를 내리며 사피엔스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물음표를 던진다.
과연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가? 현재 주어진것과 가진 것에 만족하는가? 내 삶에 책임을 지는가?의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았을 때 아무말 못하는 내 자신을 보고있노라면 나도 그러한 무책임한 사피엔스 중 하나라는 사실에 절로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잘 살아야 겠다"는 생각은 개별사피엔스(나)뿐만 아니라 사피엔스 종의 구성원으로서 우리 종의 바람직한 진보를 위한 작지만 유의미한 노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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